오늘 저는 지난 13년간 성경암송 사역을 이어오며 깨달은,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는 진실을 나누고자 합니다. 개인적인 간증을 즐겨 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는 한국교회의 미래와 직결된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1. 13년, 성경암송 사역의 고독한 여정 저는 호주에서의 목회 사역을 마치고 귀국한 후, 2012년 7월 1일 성경암송학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7월 1일이면 만 13년이 됩니다. 교회사역을 내려놓고 성경암송 사역에 전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성경암송 자체가 어렵고 낯선 사역이라는 부담감, 사역 현장의 외로움, 경제적인 어려움, 심지어 가족이나 친지들의 몰이해까지, 일반 교회 목회자로서는 겪지 않아도 될 많은 고난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물론 자비량으로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문제였습니다. 지난 13년 동안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아 아내에게 주지 못했습니다. 사역 기간 내 두 아들이 결혼했는데, 단 한푼도 쥐어 주지 못했던 것이 가장 가슴에 아픕니다. 가족들에게 이만저만 미안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훨씬 더 큰 난관은 성경암송에 대한 '오해'를 넘어선 '몰이해'였습니다.
2. '오해'를 넘어선 '몰이해'의 벽 '몰이해'란 말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거나, 이해의 결과 자체가 부재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대상을 잘못 이해하는 '오해'와는 다릅니다. 성경암송 사역에서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이 '몰이해'였습니다.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은 성경암송을 단순히 신앙의 여러 덕목 중 하나로만 여깁니다. 그래서 적당한 수준의 성경암송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암송에 '올인'하거나 깊이 집중하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며 적절치 않다고 간주합니다.
또한, 성경암송을 기도나 예배, 성경 읽기처럼 강력하게 권장할 만한 사항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오랜 기도 시간, 예배 참여, 성경 100독, 헌금 잘하기 등은 신실하고 충성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존경받지만, 어떤 성도가 성경암송에 전념하면 교회 생활에 원만히 적응하지 못하는 '고립된 신앙인'으로 보거나, 심지어 목회적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암송을 권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은 성도도 있었습니다.
3. 성경암송, 누가 가장 싫어할까요? 여기서 질문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교회 내에서, 아니 크리스천 중에서 성경암송에 가장 큰 거부감을 느끼고 반대하는 그룹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성경암송을 가장 못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지난 13년간의 성경암송 사역 현장에서 제가 절감한 현실은, 교회 내에서 성경암송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가장 못하는 사람이 바로 '목회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목회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 세미나와 강의를 통해 만난 목회자들은 성경암송의 능력과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신실한 분들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지난 13년간 성경암송에 전념하면서, 교회 내에서 성경암송을 가장 싫어하는 그룹이 바로 목회자라는 사실은 분명해졌습니다. 자신이 외우지 못하는 말씀을 교인들이 줄줄 암송하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조롱당한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암송을 독려해야 할 목회자들이 오히려 성경암송을 반대하는 선봉에 서기도 합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경험은 어느 목회자 세미나에서 쉬는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목회자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인들이 성경암송을 하면 말을 잘 안 들어요. 머리만 커져서 설교 시간에 인용한 말씀이 틀렸다고 하거나, 장과 절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교인들이 있어요. 설교할 때 그런 교인들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모릅니다."
4. 개인 신앙의 핵심, 성경암송의 중요성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공적 신앙이 예배라면, 개인적인 신앙에서는 성경암송과 묵상, 그리고 기도입니다. 저는 개인 신앙에서 성경암송이 기도보다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기도는 개인적인 청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 말씀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만큼 개인 신앙에서 성경암송과 묵상은 기도보다 중요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성경암송 사역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교회 내에서 성경암송을 은근히 멀리하는 목회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도 때로는 성경암송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로만 성경암송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들이 진정으로 성경암송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암송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기에 간간이 언급할 뿐, 그들의 속마음은 성경암송을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신학교에 다닐 때 가장 싫어했던 것이 성경암송 시험이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합니다. 단 100절도 암송하기를 거부하고 반항했던 이들이, 목회 현장에서 누구도 자신의 목회에 왈가왈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성경암송을 주창하겠습니까? 설교 준비로 바쁘고, 교인 돌보기도 바쁘고, 목회자들과 족구하기도 바쁜데, 언제 시간을 내어 그 어렵다는 성경암송을 하겠습니까? 싫어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성경암송 대신, 즉각적인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 성경통독이나 기도, 그리고 주일성수 및 예배 참석을 강조합니다. 성경통독은 권하기 쉽습니다. 성경 읽으라고 하면 되고, 기도하라고 하면 되고, 예배에 빠지지 말라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성경암송은 암송 결과가 명확히 드러나기에 함부로 강조하기 어렵습니다. 교인들은 줄줄 암송하는데 목회자가 원고를 보고 있다면, 그만큼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5. 말씀의 기갈, 한국교회의 위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국교회의 체질이 약화되고 교회가 무너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음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고,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며 비난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교회에 무엇이 가장 큰 문제입니까? 바로 '말씀의 부재'입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들어보십시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아모스 8:11-13)
하나님 말씀의 기갈입니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화려한 언변, 재미있는 예화, 정치적인 견해, 적절한 예배 분위기, 분당의 모 목사처럼 온갖 진지하고 우는 얼굴로 하나님의 말씀을 포장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옛날 한국교회가 부흥했던 것이 그런 것 때문이었습니까? 얼마나 가난하고 열악했습니까?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말씀이 흥왕했고 부흥은 계속되었습니다.
강단은 여러분의 지식을 뽐내는 학예회가 아닙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챗GPT는 당신보다 똑똑하고, 교인들은 당신보다 영리하며, 세상 사람들은 당신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여 깨달은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설교이고 생명력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린도전서 14:19)
6. 결론: 한국교회의 희망을 위하여 안타깝게도, 제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교회의 주적은 의외로 목회자들입니다. 물론 말씀을 사랑하고 암송하며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충성된 목회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성경암송을 멀리하고, 결과적으로 말씀의 약화를 초래한 장본인들입니다. 매년 진행되는 '성경암송캠프'에서 성경암송에 가장 헤매는 사람들이 바로 목회자들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성경암송을 가장 잘할 것 같은 목회자들이 성경암송을 가장 못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말씀 위에 굳건히 서고, 다음 세대가 신앙 안에서 성장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성경암송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특히 목회자들이 먼저 말씀으로 돌아와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