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6-7)
그것은 쉐마가 아니다 프린트   
박종신  Homepage Email [2019-03-08 07:56:59]  HIT : 408  

'서시빈목'(西施顰目)이라는 말이 있다. 춘추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그러나 서시는 가슴앓이로 말미암아 고향으로 잠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길을 걸을 때 마음이 아파 늘 눈살을 찌푸리고 걸었다. 이것을 본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서시의 흉내를 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겁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은 이것을 보고 처자를 이끌고 마을에서 도망쳤다. 이 추녀는 미간을 찡그린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만 염두에 두었을 뿐, 찡그림이 아름다운 까닭을 알지 못했다. 즉, 서시는 본래 아름다우므로 자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실체를 알지 못하고 무조건 흉내를 내는 것은 비웃음이 된다는 말이다.

한국의 쉐마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쉐마 또는 쉐마교육하면 우리는 유대인을 모델로 삼는다. 쉐마는 신명기 6:4-9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자녀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이를 통해 성경암송을 배우고, 하브루타를 실천하고, 테필린을 적용하는 것은 침체된 한국교회에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왕 쉐마교육을 한다면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잘못하면 율법의 재현이 될 수 있다. 바울은 거짓 형제들을 다음과 같이 경계하면서 자신은 헬라인 디도에게도 유대인의 전통인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갈 2:3-5)

첫째로, 유대인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쉐마교육은 지양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지 못한 선교대상이다. 그들이 쉐마에 순종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민족과 개인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이교도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전통이나 문화를 일방적으로 도입해서는 안 된다. 메노라에 촛불을 키고 가정예배를 드린다든지, 탈릿을 흉내낸 복장을 한다든지, 키파를 쓴다든지, 차알라(challah)로 음식을 덮거나 코셔나 무교병을 먹는 등 유대인들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복음에 있는 우리를 억지로 유대인처럼 만드는 것은 책망받을 일이다. 성공적 결과가 있었다고 해서 유대인 가정을 탐방하고 그들의 안식일 문화를 그대로 도입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도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했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갈 2:14) 

둘째로, 복음적 테필린교육을 해야 한다.
쉐마는 테필린말씀의 3번째 말씀이다. 첫째는 구원의 말씀이고, 둘째는 헌신의 말씀이고, 셋째는 신앙계승의 말씀이고, 넷째는 축복의 말씀이다. 신앙계승의 말씀이 바로 바로 쉐마이다. 쉐마교육도 중요하지만 테필린말씀은 더 중요하다. 자녀들이 먼저 구원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헌신의 삶을 살도록 교육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다음 쉐마교육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구원의 확신도 없는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쉐마의 말씀만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네개의 진리인 테필린 중 하나만 쏙 뽑아서 그것이 한국교육의 대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해선 안 된다. 작금의 한국의 쉐마교육은 한국의 교육열에 치중하여 결과론적인 쉐마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지나치게 편향된 교육이다. 쉐마보다 구원은 더 중요하다.

셋째로, 쉐마교육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쉐마를 하려면 제대로 된 쉐마를 해야 한다. 서시빈목의 추녀처럼 흉내만 내고 쉐마라고 해서는 안 된다. 쉐마는 누구의 주장처럼 프로그램도 아니고, 누구의 주장처럼 사상도 아니다. 쉐마는 하나님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인가? 바로 3가지이다. 첫째는 성경암송, 둘째는 하브루타, 셋째는 테필린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쉐마를 하려면 올바른 성경암송을 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만 13세가 될 때까지 5,852절의 말씀을 암송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도록 해야 한다. 굳이 5,852절은 아니더라도 성경암송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먼저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마음에 새겨진 그 말씀)으로 하브루타를 하는 것이다. 하브루타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의(眞意)를 깨닫는 것이다. 성경이 어렵기 때문에 혼자서는 그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하기가 어렵다. 해석은 어느 정도 가능하나 짝을 지어 하브루타를 하지 않으면 그 말씀의 진의, 즉 적용과 실천을 뽑아낼 수 없다. 하나님은 성경을 지혜자만의 머리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도 짝을 지어 하브루타를 하면서 적용점을 찾아내고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하브루타는 성경말씀 적용 및 실천방법이다.
그리고 테필린을 해야 한다. 앞에서 테필린에 대해 설명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그 말씀으로 하브루타를 명령하셨다. 문제는 그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사람의 망각의 속성을 아시는 하나님은 테필린을 준비하셨다. 테필린은 성경암송과 하브루타를 평생 잊지 않도록 하는 하나님의 전략이자 도구였다. 유대인들은 테필린이라는 성구함을 만들고 그것을 볼 때마다 "아~ 하나님이 성경암송하라고 하셨지.", "아~ 하나님께서 하브루타를 하라고 하셨지"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 결과 3,500년 동안 성경암송과 하브루타를 통해 성경을 보존했고, 히브리어를 지켰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민족의 정체성, 그리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을 회복시킨 것이다. 테필린은 구원의 말씀, 헌신의 말씀, 신앙계승의 말씀, 축복의 말씀 총 31절이다. 과연 그렇다면 이 네개의 진리를 복음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약의 정신과 신약의 정신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테필린복음인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테필린을 적용한 테필린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쉐마를 올바르게 정립한 것이다.  

넷째로 쉐마에 목적을 부여해선 안 된다.
쉐마는 인성교육도 아니고, 영재교육도 아니고, 부모와 자녀의 갈등을 해결하는 교육도 아니다. 더더욱 동성애 예방교육이나 3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도 아니다. 이것은 바로 성경이 명령한 하나님 사랑법이며 신앙계승의 방법이다. 마치 쉐마를 자녀교육이나 인성교육, 예절교육, 효도교육, 또는 교회성장의 비결로 제한한다면 그것은 쉐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쉐마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쉐마는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 사랑법이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촛점이 있다. 그런지 아닌지 신명기 6장 4-9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라. 자세히 읽어보면 쉐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천사항, 즉 성경암송, 하브루타, 그리고 테필린복음(테필린)에 순종하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 사랑법'을 자기의 원하는 목적으로 이용한다면 그것은 아주 나쁜 것이다.
다시 설명하겠다. 테필린은 구원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헌신의 말씀을 통해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계승의 말씀(쉐마)을 통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말씀에서 "그렇게 순종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를 고백하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그렇게 순수한 테필린과 쉐마에 지나친 인간의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한 자기목적을 이루려는 욕심이다.

결론 :
이단(異端)이란 단어의 뜻은 '끝이 다르다'이다. 이 말은 처음은 같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은 같았지만 인간의 욕심이나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끝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쉐마도 마찬가지이다. 순수하게 쉐마에 순종해야 한다. 끝이 달라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쉐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법으로, 성경을 암송하고, 하브루타로 그 말씀의 진의를 깨달아 순종하고, 테필린복음으로 성경암송과 하브루타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바로 쉐마의 순수한 내용이다. 그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쉐마교육이다.  

     182. 쉐마의 도구들(Tools of Shema)
     179.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