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6-7)
쉐마, 교회가 감당할 수 없는 이유 프린트   
박종신  Homepage Email [2019-03-18 10:53:13]  HIT : 342  

가이샤라 빌립보(Kaisavreia Fivlippo)의 이름을 가진 도시가 팔레스타인에 두 개 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데가볼리 지방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 중 하나로, 다메섹 남서쪽 약 80지점, 헬몬 남쪽의 경사가 심하고 경치가 좋은 산간 지방에 위치해 있다. 알렉산더 이후 헬라 사람들이 이 지역으로 모여 들었을 때 그들은 그곳을 전과 같이 신성시하여 그 판(Pan)을 위하여 사당을 세우고 그것을 파네이온(Paneion)이라 불렀고, 그 지역을 파네아스(Paneas)라고 했다.

헤롯1세는 그 당시의 유대인과 로마인을 달래는 이중정책을 하고, 그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이 도시를 자기의 영지로 준 사실을 기념하여 로마와 아우구스투스를 위한 성전을 지었다. 분봉왕 빌립은 황제의 영광을 기리며, 이 성읍을 더욱 아름답게 단장하고 해안 지역의 가이사랴와 구별하기 위해 빌립보를 덧붙였다. 그 후 아그립바세가 이곳은 네로를 경하하는 의미에서 이곳을 네로니아스’(Neronias)라 호칭하였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로 인식하느냐?"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예수님에 대한 인식을 물은 것이다.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어떤 사람들은 세례요한,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 중의 한 선지자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누구로 인식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때 베드로가 말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su; ei oJ Cristov", oJ uiJo;" tou' qeou' tou' zw'nto").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16:18-19)

예수께서는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교황주의자들처럼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 반석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신약성경은 베드로 한 사람에게 교회의 기초를 놓지 않는다. 사도들 전체가 교회의 토대이다. 그들의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세우신 것이 아니라 그들 전체를 선택하시고 신앙과 진리를 가르치셔서 교회의 교사들로 세우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자신의 인격의 토대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이 토대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서 표현되었다. 또한 주님의 교회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것이 성경적 교회관이다.

그런데 신학적으로 교회론에는 수많은 오류들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의 교회관은 치명적인 오류를 안고 있다. 중세 서유럽의 교회는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철저하게 교회라는 제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교회 제도 밖에는 구원이 없다. 따라서 개인이 구원을 확보하는 길은 교회라는 거룩한 공동체에 들어가 그 의식을 준행하는 길뿐이었다. 안수를 통해 사도로부터 그 후계자 세대로, 다시 그 세대로부터 그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내려온 역사적, 제도적 연속성은 교회와 사도들의 연속성을 확고하게 보증해주었다.

중세 교회는 3세기 순교자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200?-258, 별명은 Thascius)가 남긴 명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을 인용해 철저하게 제도라는 관점에서 그려낸 교회의 모습을 옹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구원을 받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가톨릭교회에 들어와야 했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교육을 받아 웅변술의 스승으로 유명했던 키프리아누스는 246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249년 주교(主敎)로 추대되었다. 250년 로마 황제 데키우스의 박해를 비롯한 수차의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사제와 신도를 인도했다. 교리상의 논쟁에도 가담하여 큰 발자취를 남겼으나,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의 박해로 순교했다. 신학의 여러 문제, 특히 교회론과 관련한 저작 <가톨릭교회의 통일>을 남겼고,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아우구스티누스를 위시한 많은 신학자, 사상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사도 베드로가 로마 교회의 제1대 주교라고 주장하는 등 교회 통일 및 교계(敎計) 제도 사상 가장 명확한 규정을 내려 교회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뛰어난 라틴어의 문장가로서 65통의 편지가 남아 있다.

이런 사상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 갓 태어난 개신교회가 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간다는 것은 신학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개신교 신자들은 기독교회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답을 마련했다. 개신교가 제시한 새 교회론은 제도라는 측면에서 중세 교회와 전혀 연속성을 가지지 않았다. 새 교회론은 교회의 본질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개념적 기초들을 제시함으로써 근대에 교회들이 급격히 확산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사고는 모험가들을 자극하여 그들만의 교회를 세우게 했고, 필요한 경우에는 이전부터 존재해온 교회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개신교의 교회론을 이해하면, 이후 서구 세계 전체에서 교회가 현저하게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며 조각조각 쪼개져버린 현상을 이해할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주류 종교개혁가들은 기독교회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 다른 하나는 성례적 적절한 시행이었다. 장 칼뱅은 이것을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선포하고 경청하며,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제도에 따라 성례를 시행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교회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은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20)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칼뱅의 정의는 그 정의가 명백히 언급하는 것 때문에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그 정의가 언급하지 않은 것 때문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칼뱅의 정의에는 교회가 역사적, 제도적 측면에서 사도들과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없다. 칼뱅은 제도적 측면에서 사도들과 연속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보다 사도들이 가르쳤던 것을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제도적 연속성이 지식의 충실함을 보장하는가? 칼뱅은 가톨릭교회가 제도적으로 표류했으며, 사도들이 가르친 근본 사상에 터 잡지 못했다고 보았다.

이 급진적인 새 교회론은 사실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성례를 통해 복음을 기뻐하고 선포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임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복음이 참되게 설교되는 곳에는 교회가 모이게 되어 있었다. 개신교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교회론이 교회의 올바른 신학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듣자 1세기에 살았던 기독교 저술가 안티오크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110년경)가 한 고전적 명언 "그리스도가 계신 곳은 어디나 교회다"(ubi Christus ibi ecclesia”라는 말로 응수했다.

개신교의 이 독특한 교회론은 1500년대 초에 탄생했지만,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그 완전한 의미가 분명해졌다. 개신교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권위 구조가 없었기 때문에, 특수한 형태의 사역을 펼쳐보겠다는 꿈을 품은 모험가들은 자신들만의 회중 공동체를 시작하거나 심지어 자신들만의 교파를 시작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많은 개신교회들이 서둘러 자신들만의 특수한 개신교상을 구현한 권위 구조를 건설하여 자신들의 목회자와 구성원들을 통제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의 사상을 인용한 것이다. 3세기 순교자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가 남긴 명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교회에만 구원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교회론은 철저하게 교회의 모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신자들을 교회 안에 묶어 놓으려는 순수하지 못한 악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독선적인 교회론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바로 가정이다. 독선적인 교회론을 가진 사람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외면한다는 것이다그러한 교회론을 가진 목회자들이나 신자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그리고 가정 속의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허구한 날 교회로 불러들여 가정에서의 신앙, 가정 속에서의 교회를 훼방했다. 가족들과 함께 예배하고, 신앙계승을 이루어야 할 공간인 가정에 머물 한 숨의 여유도 주지 않고 교회로 불러들이기 위해 작전이 펼쳐왔다. 그것이 현대교회의 모습이다. 마치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는 것처럼...

결과 한국교회는 신앙계승에 실패하게 되었다. 자녀들의 신앙계승을 감당하지도, 감당할 수도 없었던 교회들은 가정 속에서 신앙계승의 기회마저 주지 않기 위해 부모를 교회 안에 묶어 둘 명분만 찾아냈다. 교회들은 부모들에게 직책과 책임, 그리고 신앙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교회 안에 묶어두는데 성공했다. 그러는 동시에 '당신의 자녀들의 신앙은 교회가 책임지겠다'는 무책임한 공약만을 내세웠다. 그러나 교회의 공약은 거짓이었고 그 결과 수많은 다음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버렸다. 결국 크리스천 자녀들의 신앙에 머무르는 비율은 10%대에 머물게 된 것이다. 90%을 잃어버린 셈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기관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탄생된 것이라면 가정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함께 시작된 하나님의 기관이다. 가정은 남편과 아내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며 그로 인해 생산된 자녀들의 영적, 육적, 지적으로 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학교이자 최초의 신앙기관이다. 따라서 자녀들의 신앙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또 자녀의 신앙계승은 교회나 목회자가 아닌 부모, 특히 아버지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신앙을 계승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바로 쉐마(Shema)이다. 

요즘 교회마다 '쉐마!, 쉐마!'하는데, 쉐마는 결코 교회교육이 아니다. 쉐마는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니다. 쉐마는 교회용이 아닌 가정용으로 결코 교회가 감당할 수 없다. 만약 교회가 쉐마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월권이다. 물론 쉐마인 성경암송과 하브루타는 가정과 교회로 연계되어야 한다. 또 교회는 성경암송과 하브루타를 실시하되 가정과의 연계를 통해 쉐마를 완성시켜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쉐마는 교회교육이 아닌 가정교육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가정의 중요성과 함께 부모의 역할을 맡기신 것이다.

신명기 6장 4-9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라. 단 한 번만 읽어봐도 쉐마가 교회교육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쉐마는 교회교육이 아닌 가정교육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교회들이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쉐마를 악용하는 것이다. 그런 배경에는 교회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키프리아누스'의 망언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185. 세대 간의 갈등을 없애는 단순한 지혜
     183. 쉐마와 구원, 뭐가 더 중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