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6-7)
좀 특별하게 살자 프린트   
박종신  Homepage Email [2020-04-07 12:08:11]  HIT : 170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 원하시는가?"

한 번쯤 고민해 본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매이다 보면 결국은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는 무조건적인 삶을 살아가기 십상이다.
그렇게 살다가 틀림없이 몸에 병이 들고 골골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설교에서, 강연에서, 책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로부터, 목사님으로부터...
"진실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한다"
"열심히 전도해야 한다"
"기도 많이 해야 한다"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삶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진실하기 위해서, 성실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이타적인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열심히 전도하기 위해서, 기도 많이 하기 위해서, 비전을 갖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삶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들이지 삶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말들을 강조하는 것은 타인을 억압하고 스스로를 옥죄이기 위한 일종의 제한장치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많이 해야 상대방에게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하디 흔한 잔소리의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말들이 삶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은 최근 모든 것을 정지시킨 코로나19 앞에서 증명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앞에는 진실, 성실, 최선을 다하는 것, 이타적으로 사는 것, 하나님을 잘 믿는 것, 열심히 전도하는 것, 기도 많이 하는 것, 비전을 갖는 것으론 정답을 얻을 수 없었다.
오히려 코로나19가 무엇이 삶의 본질이며 무엇이 비본질인지를 분명하게 정리해 준 것 같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삶의 본질대로 살아갈 것인가?
결론은 단 하루를 살아도 특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본질이 아닌 문제들에 매인 인생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모양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고백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신묘막측)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로 세상에 왔고, 특별한 삶을 살다가, 특별하게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기 때문이다.
신묘막측이란 '신통하고 묘하여 미리 추측할 수 없음'이란 뜻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되는 것이 삶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정해진 틀에 맞게 살도록 강요하는 것이 옳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신묘막측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천편일률은 성경의 정신도, 가르침도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를 사람이 아닌 로봇으로 만들면 될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것 열심히 하는 특별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즐겁게 살라고 하신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라고 하신다.
행복하게 살라고 하신다.
단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면서 말이다.
지지리궁상이나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라고 하지 않으셨다.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8-9)  

과연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특별하게 살 것인가?
진지한 고민을 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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