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6-7)
교회가 교회다울 때 어려움을 이겨낼 힘과 권위를 얻는다 프린트   
박종신  Homepage Email [2020-07-23 14:54:43]  HIT : 149  
위 사진을 보면서 생각해 보자. 과연 이러한 인위적(人爲的) 노력들이 한국교회를 살릴 방법이 될 것인가? 과연 그럴까? 아니다. 이런 인본적 프로그램은 한국교회가 세상에 잠식당하는 지름길일 뿐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코로나19로 어려운 한국교회에 또 다른 어려움들이 찾아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교회는 마치 잠재적 범죄집단처럼 비쳐지고 있다. 세상은 한국교회를 마치 집단감염의 온상처럼 여기며 맹비난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까지 가세하여 한국교회에 대해 노골적인 핍박을 가하고 있다.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은 정부의 행정지침에 모욕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교회는 방역 기준을 철저히 지키지 않았다고 당국의 조사까지 받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가 세상에 그리스도의 영향을 주지 못하자 세상이 교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악마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그룹 금지 행정명령이다. 크리스천 4~5명이 식당이나 카페에서 식사하고 모임을 가지면 문제가 된다. 신고자는 포상금을 받을 수도 있다. 다른 테이블에서 커피와 식사를 하는 사람과 똑같은 국민인데, 왜 크리스천만 잠재적 범죄자처럼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까. 전체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무시한다. 전체주의적 사고와 다름없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양심과 사상, 신앙의 자유에 따라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표현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 신앙만 법으로 제재하고 이행강제금을 물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려 한다.

문제는 이러한 어려움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응방법이 근본적인 해결법도 아니고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행정지침에 따라 방역기준을 지키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방법이 달라야 한다.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내놓은 대안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스마트폰으로 청원을 넣고, 시위를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대응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정권퇴출하자고 목소리를 높이자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있다. 현 정권에 빨간 프레임을 씌워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행동에 대한 실효성의 의문을 가지고 있다. 과연 우리 크리스천들이 청원을 넣고 목소리를 내고 시위를 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에 대한 반감만 더해질 것이다. 복음을 막는 행위가 될 수있다. 전도가 끊어지고 한국교회의 소멸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분명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로, 우리가 대응하고 있는 방법이 오히려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을 파멸시키는 결과로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로, 정부의 핍박에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로, 지금까지 한국교회와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적으로 정당했으며 우리의 정당성을 옹호할만큼 당당했는가?  

우리는 대답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방법은 쉐마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인 쉐마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그 말씀으로 하브루타하고, 그리고 테필린복음을 통해 후손들에게 신앙계승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가 이 시점에 결단해야 할 명령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쉐마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대명령을 준수할 자격을 얻는 것이며 최악의 상황을 치달리고 있는 한국교회의 진정한 해법이 될 것이다. 교회가 교회다울 때 모든 문제를 해결할 힘과 권위를 얻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에 대한 입증사례이다.


     
     207. 교회와 크리스천이 세상으로부터 극렬한 미움을 받는 이유